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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en eun young jung

퀴어, 미학, 정치
정은영
   
     
0. 들어가며
일부의 독자들이 다소 거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미학은 정치적이여야 한다.” 라는 고집스러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것은 이후에 언급하는 모든 예술과 미학에 관련된 견해들이 언제나 정치성에 대한 고민들을 동반한 것이었으며, 정치는 또한 예술의 식별 체제로서의 미학을 경유함으로써 그 의미와 역할이 가장 명백해 진다는 나의 편향된 입장을 미리 알리기 위해서이다.

특히 ‘퀴어한’ 미학은 무엇보다도 공적이고 정치적인 열림과 확장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믿는다. 내밀하고 사적인 토로로 뒤범벅된 자기연민에 사로잡힌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미학적 도전도 가능하게 하지 못한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소수자 정치의 오랜 슬로건은 사적인 것들이 정치적인 것으로 이양되는 과정과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파생된 저항적 실천들을 지지하는 것이지, 애정결핍과 인정욕망으로 점철된 투정 담긴 ‘ 봉인된’ 일기장을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와 옹호하려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나는 이 글이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 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Felix Gonzalez-Torres 의 작업에 기반한 퀴어미학의 정치성으로 다가가길 원한다. ‘퀴어한’정체성이 곧 정치성을 담보하는 정체성 정치를 벗어나, 정치화되는 정체성의 ‘수행’에 주목하기를 원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미학적 태도, 그리고 퀴 어공동체에 대한 인지와 개입에 대한 애호를 드러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몇몇 미학적 이론에 빚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순 전히 내 개인의 사 유만으로 는 나의 편향성을 논증하기에 지적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레이슨 페리, 혹은 클레어 Claire
“It’s about time a transvestite potter won the Turner Prize.”
(이제 ‘복장도착자’ 도공이 터너상을 탈 때가 되었군요.)
― 그레이슨 페리, 혹은 클레어의 터너프라이즈 수상소감(2003)
1

스스로 “‘복장도착자’ 도공 Transvestite Potter ”이라 정체화하는 그레이슨 페리, 혹은 클레어는 2003년 터너프라이즈 수상자가 되었다. 그/녀는 푸른빛이 도는 새틴 소재의 셜리템플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에 참여했다. 마침내 수상자로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자 그 옷차림 그대로 연단에 올라 수상소감을 말했다. 그 자리엔 그/녀의 아내와 아이도 함께 했다.

이것은 어쩌면 매우 ‘퀴어한’ 가시화였다. 검은 수트 일색인 시상식장의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의 그/녀의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었고, 작가인 그레이슨 페리가 호명되었지만 그의 분신인 클레어가 공식석상에 올라섰다는 것이, 그런 그/녀가 아내, 아이와 동석했다는 것이 또한 그랬다. ‘미술’상인 터너프라이즈가 ‘도공’에게 상을 수여한 것이나, 그/녀의 아름다운 도자기 위에는 수많은 변태적인 드로잉이 가득했다는 것 또한 이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모든 장면이 영국의 공중파 BBC를 통해 전 영국에 중계되었다는 것 역시 기이하기만 했다. 적어도 한국이라는 지형에서 저쪽을 건너다 보기에는 말이다.

매해 가장 논쟁적인 작품들에 상을 수여함으로써 변함없이 ‘시끄러운 주목’을 선택해 온 터너 프라이즈로서는 페리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 당연했다. 물론 영국내의 유일한 ‘순수미술로서의 현대미술’에 관여하는 상으로서 ‘도공’의 손 을 들어 준 것이 단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현대미술의 장르파괴적이고 저항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시대적이며 역사적 선택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작가로서의 그레이슨 페리가 자신의 여성분신인 클레어의 모습으로 ‘공식적인’ 시상식에 참여했고, 수상소감을 통해 스스로 정체성을 호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 역시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공영방송인 BBC의 생중계는 이 한 ‘복장도착자 도공’의 기이한 실존을 영국 내 거의 모든 가정에 전달함으로써 소수자 정체성의 도전을 미디어의 파급력 안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물론 언제나처럼 그 밤이 지난 후 터너상에 대한 논쟁은 불같이 번졌다. 페리 의 작품은 애초에 전시될 때부터 16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는 관람이 금지되었고, 그/녀의 터너상 수상에 대한 대중의 반대 의견과 혐오 발언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터너상측은 늘 그랬던 것 처럼, 들썩이는 여론에 당혹해하지도 수습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현대미술은 원래부터 그렇게 날 세운 의견들의 각축장 인양 모든 것이 저절로 논쟁되도록 사건을 던져두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논쟁의 핵심이 작품의 외설적 수위에 관한 것에서 과히 빗겨나거나, 작가의 비규범적인 정체성을 모욕하는 쪽으로는 지나치게 옮겨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논쟁’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만 했다.

그로부터 거의 8년이 지난 2011년 10월, 놀랍게도 ‘대영박물관’이라는 제국주의 침략의 표본실이자 문명의 공동묘지와 같은 장소에서 그레이슨 페리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다. <알려지지 않 은 장 인의 무덤The tomb of the unknown craftsman>2 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그/녀의 전시는 모든 규범에 도전하는 그/녀의 삶과 태도, 그리고 작품들이,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익명의 공예가들의 작품 190여점과 섬세하게 레퍼런스로 등치되거나 상호참조되는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이 전시는 작가 스스로 기획했을 뿐만 아니라 2년여에 걸쳐 박물관 유품을 리서치하는 작가의 노력과 헌신으로 가능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크로스드레서 도예가’로서의 실존을 역사에 등재되지 않은 채 이름없이 사라져간 공예가들의 비실존에 마주하게 하고, 이름없는 자 들에게 연대함으로써, 정체성의 가시화 전략을 넘어서 심연의 공동감을 불러내는 것을 택한 것이다.
  1
Transvestite potter wins
Turner. BBC News.
7 Dec. 2003. http://news.bbc.co.uk/2/hi/entertainment/3298707.stm


















2
Grayson Perry The Tomb of the
Unknown Craftsman.
The British Museum.
http://news.bbc.co.uk/2/hi/entertainment/3298707.stm







     
2.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그리고 그의 더블 Double 3


“When people ask me, “Who is your public?”
I say honestly, without skipping a beat, ‘Ross.’”
(사람들이 내게 “누가 당신의 대중/관객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진심으로, 단숨에, 대답할 것이다. ‘로스’라고. )

― 로버트 스토어(Robert Storr)의 인터뷰(1995)4

잘 알려져 있듯이, 펠릭스 곤 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의 원천은 언제나 그의 동 성 연인 ‘로스’였고, 그의 가장 중요한 관객도 늘 그였다.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 망한 연인의 상실한 육체를 그의 몸무게 만큼의 사탕으로 되돌려 놓은 작품 「무제(로스) 1991」나, 신체는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있는, 대형 광고판 위의 두 개의 베개,「무제 1991」는 대표적으로 곤잘레스-토레스 작품이 어떻게 생성, 유 지, 확산되는지를 알려준다. 그의 작업은 대개 한 오브제의 ‘더블’ 혹은 ‘멀티플multiple’로 배치되고 변형/훼손되며, 때론 공유된다. 이민자이자 퀴어, 그리 고 HIV 감염인이었던 작가는 ‘타자’의 반복되는 은유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의 은유로서 ‘더블’의 개념을 즐겨썼다.

곤잘레스-토레스의 모든 작업은 그 자신의 삶의 기록이라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사적 역사를 고스란히 투영한다. 그는 쿠바출신이라는 이국성을 지닌 채 뉴욕에서 살아내야하는 이민자였고, 남성 동 성애자이며, 에이즈 합 병증으로 사망한 분신과 같았던 연인을 그리워했고, 그 자신 역시 감염자로서 곧 삶이 소멸되리라는 것을 알고서도 더 치열하게 작업에 몰두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상실은 분명한 사적 역사이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애도를 잡아둔 멜랑콜리한 사물들은 수많은 타인들을 그 앞에 불러모았다. 그가 지닌 취약성과 주변성은, 슬픔과 애도의 정치로, 삶을 향한 헌신으로, 소멸하는 타인과 세계를 향한 용 기로 변모하는, 예술적이며 정치적인 실천이 되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동성애와 HIV에 대한 지독한 혐오가 여전히 팽배한 한국 에서 아시아 최초로 곤잘레스-토레스의 대규모 전시가 수입되어 진행중이다.5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악마취급을 받았을 뿐 아니라 대규모의 집단 불 매 운동의 표적이 되었던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을 떠올리면 어쩐지 이 남성 게이이자 에이즈 합병증으로 요절한, 나아가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출신 미술 가의 전시를 향한 관심은 너무나 미미하고 고요해서 이상할 지경이다. 감히 ‘삼 성’이 소유한 미술관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거나, 미술전시의 대중적 파급력이 이토록 소소할 뿐이거나, 혹은 곤잘레스-토레스가 선택한 정서적 은 유의 외연을 띤 “위협적이지 않은” 재현의 양식 때문일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어쨌거나 놀랍게도 한국이라는 분열증의 사회에서 그의 전시는 보이콧은 커 녕, 아주 약간의 논쟁적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의 정체성은 탈없이 자연 스럽게 수용되었고 유행과도 같이 소비되었다. 공유되고 헌신함으로써 상호 관 계하는 특수한 형식과 맥락을 섬세하게 살려낸 전시는, 그간의 곤잘레스-토레 스 전시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좋은 큐레이션curation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 며, 연일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거린다. 더구나 그의 전시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퀴어커뮤니티 내부가 들썩였고, 전례 없이 공개되지 않은 전시에 대한 에세이 6 가 쓰여지고 유통되기도 했다. 미술계 역시 그를 기다리는 듯 했다. 많은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의 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언어들이 이곳 저곳에서 넘치 고 있다. 곤잘레스-토레스의 ‘더블’은 연인 ‘로스’, 혹은 ‘쌍’을 이루는 그의 오 브제들 바깥에서도 수많은 타인들로, 애정의 물건들로, 관계의 실천들로 증식 되고 유통되고 있다.
 

3
삼성미술관 플라토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개인전에 붙인
전시 타이틀





4
Robert Storr. Art Press, Jan
1995. (FELIX GONZALEZTORRES.
Qcc.
org/Pages/FelixGT/
FelixInterv.html>)















5
Felix Gonzalez-Toress,
「Double」, 삼성미술관 플라토,
2012.6.21–2012.9.28











6
웅,「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회
고전에 앞선 단상: 불가능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한 영원한
시도들」, 동성애자 인권연대
웹진 ‘랑’, 2012.6.7
com/442>

     
3. 상실이라는 공통감, 슬픔과 애도의 정치
“슬픔은 사유화 한다고, 슬픔은 우리를 고독한 상황으로 회귀시킨다고, 그런 의미에서 슬픔은 탈정치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슬픔이 복잡한 수준의 정치 공동체의 느낌을 제공하고, 슬픔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근본적인 의존성과 윤리적 책임감을 이론화 하는데 중요한 관계적 끈 을 강조함으로써 그렇게 한다고 생각한다.”

― 주디스 버틀러(2008)7

그레이슨 페리가 제국주의의 무덤에서 불러낸 이름 없는 공예가들과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수많은 ‘더블’들은 어떤 면에선 흡사한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소멸되고 상실된 것들, 슬 픔을 불러내고 때론 고통 속에 남겨지지만 직면하려 하지 않는 것들, 얼굴 없고 목소리 없는 것들, 극복하고 처단해야 할 것 들이다. 그것들이 예술이라는 언어로, 미학과 정치라는 식별의 체계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슬픔 위에서 이상한 queer 것들이 싹트고, 그 이상한 미학은 정치 성을 길러낸다. 상실의 고통이라는 ‘공통의 경험’이 우리를 비로소 타자와 맺고 있는 관계의 서사로 안내한다.8 이로 인해 우리는 ‘나’의 존재를 ‘너’라는 타인에게로 이양시킬 수 있다. 버틀러는, 에이즈로 인해서, 또 9.11사태로 인해서 상실한 모든 것들에 대한 슬픔을 털고 분연히 일어나 ‘대신’ 그 원인을 처단하기를 종용하는 국가권력의 통치전략을 비판하면서 ‘애도’의 정치를 제안한다.9 인간의 취약성과 불확실한 삶을 인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정치적 공동체가 가능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적 재현에서의 소수자성은 거의 정체성의 인정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혐오를 폭로해 동정에 호소하거나 자아를 축복하는 치유, 혹 은 과 잉의 자존감과 자의식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등장하곤 했다. 들리지 않는, 번역되지 않는 소수자의 언어로 스스로를 눈물겹게 설명하거나, 억압을 규정해 폭로하고 고발하며, 정체성의 외화된 형식을 부단히 반복 재현하는 예술들이 그러하다. 이렇듯,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고, 사회로부터 거부되는 경험은 깊은 우울감으로 주저앉게 하거나, 반대로 소수성을 소재화하고 특권화함으로써 일어서게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상실과 거부의 경험이, 이 비통함의 경험이 오히려 밖을 향해 열릴 수 있다고 파커J.파머는 주장한다.10 그는 ‘비통한자들The brokenhearted ’이 마음이 부서져 흩어지는 broken apart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린 broken open 이 들이 되어 정치의 주 축을 이 룰 때 보다 정의롭고 용 감한 힘 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11

버틀러와 파머에서의 경우 모두 ‘정치’란 ‘통치의 차원’이 아니라, 어떠한 ‘공동 의 차원’에서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충분히 낡은, 근 대 예술의 자율성과 독자성, 즉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지하는 칸트의 미학은 미적판단이 매우 보편적인 것이며 취향의 문제가 아닌 소통가능성에 있다고 보 았다. 칸트는 보편적인 취미 판단을 설명하기 위해 ‘공통감 sensus communis’이라 는 개념을 사용하는데,12 한나 아렌트는 오히려 칸트의 ‘공통감’을 ‘ 공동(체)감’ 으로 독해하여 취미판단의 원리가 아닌 정치철학의 원리로 이 ‘공통감’을 위 치시킨다.13 형식주의 비판 위에 살아남은 몇몇의 미학들은 특수성을 지나치게 특권화 시킴으로써 보편성과 평등의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공통감’을 통한 칸트의 형식주의 미학의 사회정치적 해석의 가능성은 그런 의미 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랑시에르 역시 칸트의 취미판단의 보편성, 그리고 공 통감을 경유하지만 보편 으로의 합의가 아닌 보편/특수에서 빚어지는 긴장과 불화를 정치미학에 요구 한다. 그는 예술과 정치가 서로 대립하고 분리된 상태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에 게 정치란 “불일치하는 인간 행동 형태이며 인간 집단의 결집과 명령을 작동 시키는 규칙들에 대한 예외이다.”14 또한 미학이 “ 어떻게 예술의 식별체제로서 그 안에 하나의 정치나 메타정치를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려”15 노력했다. 현대 의 예술은 불화와 모순의 장소에서 생산된다. 그리고 어떤 예술가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7
주디스 버틀러,『불확실한 삶』,
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 출판 부,
2008.













8, 9
주디스 버틀러,『불확실한 삶』,
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 출판 부,
2008.





10, 11
파커 J. 파머,『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2012.



12
임마누엘 칸트,『판단력 비 판』,
김상현 옮김, 책세상, 2005




13
김상현,「칸트미학의 정치철학적
함의-아렌트적 해석을 중심으로」
『 대동철학회 논문집』
24호. 2004.



14
자크 랑시에르,『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열 옮 김, 도서출판 길,
2008.



15
자크 랑시에르,『미학안의 불편
함』,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08.


     
4. 퀴어, 미학, 정치

“그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파괴했듯이” 그는 언제나 존재 하기 위해 그만의 “사라짐”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고정되고, 얼어붙은 오브제가 아닌 언제나 생성하는 존재로 계속해서 존재하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는 같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역사 속으로 편입시켰다. 그는 “나는 존재했다” 혹은 “나는 여기 있었다”라고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조각상이 되지 않고 그 자체로 과정의 형태로서 세계 속으로 스며들고 무한하고 영원히 다른 존재의 부분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 권미원(2012)16

현대의 미술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그 급진성과 정치성이 날마다 빠르게 갱 신된다. ‘소수자 미술’ 역시 예외적이지는 않아서, 본질론이나 정체성 정치를 경 유하는 재현은 흥미의 차원에 있어서도, 의미의 차원에 있어서도 낡고 지루한 것으로 치부된다. 이것은 현대미술의 언어가 지나치게 새롭고 힙hip 한 것을 갈 망해서라기 보다는, 미술언어 자체가 가진 의미의 지층을 수 용하고 갱신하며 변태 transformation 하려는 자기 본연의 성질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또한 미술/예 술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그것이 늘 세계와 시대를 투영함으로써 우리가 그 것을 향유하려고 할 때 조차도 우리의 삶에 직면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하기 때 문이다. 따라서 미학의 최전선에서 언제나 정치를 언급하게 되고, 정치의 한복 판에서 미학을 논하게 된다.

간혹 예술의 공공성이나 정치성을 ‘정치적 예술’이나 ‘비판적 예술’의 동의어인 것처럼 혼용하는 경우를 본다. 이것은 그 예술을 구성하는 어떤 ‘소재’가 모든 것을 봉합하는 일종의 소재주의적인 발상에서 기인한다.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예술은 그 예술이 직면하고 있는 어떤 미학적 태도나 성질과 무관하게 “정치적 이고 비판적인” 내용을 담 아내는 것으로 충 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퀴어’미술 (혹은 소수자 미술)을 판단하고 정의하는 방식도 대부분 이와 유사하 다. 소위 ‘일반적’인 미학적 독해와 미술사적 경향의 질서에 위치되지 않는 예 술을 구별짓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채택되는 소재주의적 태도는, 그것 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 정치적이라는 오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일련의 성 찰이 필요하다.

퀴어, 미학, 정치는 마치 하나의 시스템을 공유하는 각각의 서로 다른 외연과 도 같다. 퀴어미학은 퀴어함queerness 이나 퀴어코드 queer code 를 전유해 양식화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나와 타인의 삶, 세계의 사건들을 퀴어하게 미학화 하고 정치하게 퀴어화 할 것인가를 문제삼는 태도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미 적양식들에 대한 도전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가능성은 제도비판 으로 시작될 수도 있고, 폭로의 정치로, 정체성 정치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어쩌면 예술가 자신의 과잉자아화된 방향 모를 욕망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 다. 그러나 지금 나의 고민은 그 시작 이후에 무엇이 담론이 되고 무엇이 정치 가 되었는지에 있다. 퀴어, 미학, 그리고 정치는 언제나 모두에게 달가운 단어 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불화와 긴장속에서라도 이들을 기꺼이 받아 들여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16
권미원,「예술작품의 생성:펠릭
스 곤잘레스-토레스, 부활의 가
능성, 나 눌 수 있는 기회, 일시
적 휴전」, 삼성미술관 플라토 곤
잘레스-토레스 전시도록, 2012.
     
     
     
     
     
     
     
     
     



퀴어인문잡지 삐라, 1호,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