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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연대글.
신양희 기자

작가 정은영은 페미니즘이 한계가 아닌 확장의 언어임을 작업으로 실천하고 있다. 존재하지만 계속 덮이는 존재, 사라져 가는 존재, 비천한 존재에 대한 연대감을 비디오에 담았고, 구체적으로 여성들의 이야기, 그녀들의 상황, 삶과 일상을 듣고 있다.

사라지는 존재들의 목소리는 낮고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수난당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비극의 정서를 동반한다. 작품 <그 여자의 두통약>(2006)의 미장원집 여자와 <간밤의 여행자>(2007)의 조선족 여자를 통해 비루한 존재를 현현하게 한다. 비극적인 서사는 읊조리는 내레이션을 통해 더 극대화된다. 헌데 서사를 따르는 이미지는 이야기와는 무관한 어떤 도시의 풍경이거나 밤의 골목 풍경이다. 이 불안한 풍경은 제대로 발 딛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는 ‘유령(귀신)과 같은 비천한 삶들의 존재 지반의 불안정함을 극대화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작품 <장마>(2011)에서 잘 드러난다. 김진숙이라는 구체적인 여성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시위’라는 정치적 사안에 집중하기보다 쏟아져 내리는 장마와 시위 현장의 느린 움직임, 그리고 김진숙의 울부짖는 연설을 배치함으로써 우울의 정념을 생산해 낸다.

우울의 반대편에는 히스테리가 있다. 돌아가는 세탁기를 고정 숏으로 잡은 영상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기침 소리를 조합한 <천식>(2006)은 불편한 혹은 신경을 자극하는 작업이다. 단순한 편집이지만 영상과 소리의 절묘한 조합은 신경질적 감흥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또 ‘꽃들이 천지사방에 신경질적으로 발광’하는 날 아줌마들이 연분홍 옷을 입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 길을 활보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꽃놀이>(2006). 생에 몇 번이라도 이렇게 당당히 걸을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아줌마들의 행진은 기묘하다. 특히 극적 상황이 더 고조되는 이유는 재배치된 ‘행진’ 음악 때문일 것이다.

‘동두천 프로젝트’는 공적인 의제를 두고 참여했던 첫 작업이다. 동두천은 미군부대나 클럽가의 이주여성 문제 등
첨예한 문제들이 상존하는 곳이다. 작가는 이 동네의 민감한 이슈를 쫓는 대신 1년 가까이 이곳을 드나들며 삶의 여러 장소를 마주했다. <좁은 슬픔>(2008)은 이러한 마주침으로 만든 영상 작업이다. 건물과 건물, 그리고 그사이 문이 잠긴 좁은 철문을 세로 프레임에 함께 있다. 이 프레임 위로 부분 영상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 소스들은 동두천의 보산동 진입로, 신천, 무연고 묘지, 사계절의 변화 등을 채집한 것들이다. 여기에 장례식 장면과 염하는 소리 등을 넣어 영상 콜라주를 만들었다. 이러한 이질적인 조합을 통해 이름 모를 존재의 삶과 죽음을 애도한다.

작가가 2008년 시작한 여성국극(國劇)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작업이다. 여성국극은 1948년 처음 등장했는데 오직 여성만 무대에 올라가 연기할 수 있는 창극이다. 판소리가 중심이지만 연극에 가까운 독특한 장르이다. 작가는 여성국극에서 남성 연기를 했던 여성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을 비디오에 담았다. 그녀들의 남역 연기와 제스추어, 일상의 이야기가 토대가 된 비디오들은 ‘젠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섹스’와 ‘젠더’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지만 작가는 여성국극의 남역 배우들에 카메라를 밀착하고 오랫동안 그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젠더의 문제를 전면화한다.

화장을 할수록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과정을 담은 <분장의 시간>(2009)과 여성의 작은 몸이 어떻게 남성화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뜻밖의 응답>(2009)은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짓는 표면적인 현상이다. 남역 전문 배우들의 구체적인 목소리와 연기를 통해 남성의 역할차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작업이 <무영탑>(2010)과 <마스터클래스>(2010)이다. <무영탑>은 남역 배우가 어떻게 연기해야 더 남자다운 멋을 낼 수 있는가를 극의 주요 장면과 결부해 설명한다. <마스터클래스>에서는 여자가 어떻게 작은 신체를 극복하고 남자로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과 그에 대한 연기를 차례로 보여준다. 또 남역 배우들의 연기와 일상을 비교하는 작업이 <오프/스테이지_조영숙>(2012), <오프/스테이지_이소자>(2012)이다. 이 두 비디오는 연기와 삶은 일치한다는 증언과 전혀 다른 것이라는 증언이 맞부딪힘으로써 의미가 발생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남역 배우들만 선정했고, 상반된 의견을 가진 배우들을 섭외해 인터뷰를 담거나 연기를 하도록 요청했다. 젠더가 수행된다는 것은 여성국극 남역 배우들의 특수성 때문에 전면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일부러 더 이 상황을 연출했던 것인지 모른다. 젠더는 여성국극의 남역 배우들의 다양한 예를 통해 알 수 있듯 그 경계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실 현실에서도 모두 ‘젠더 규범’을 수행하고 산다. 그것 또한 연기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이미 규칙으로 만들어진 ‘젠더 규범’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국극 프로젝트’가 과연 지금- 여기에서 의미가 있다면 어떤 지점이 있을까. 젠더는 구성되며 수행되는 것이 맞다면, 여성국극의 남역 배우들은 ‘젠더 규범’을 그대로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국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신파를 주로 연기했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작가는 남역 여성 배우들의 연기에만 접근하지 않았다. 무대 위의 남성으로서의 연기와 개인의 삶을 연결하는 지점이나 섬세한 비교 등은 역으로 ‘젠더 규범’을 전복하는 기제가 될지 모른다. 아직도 이 작업은 진행 중이고 작가는 어떤 형태로는 이 프로젝트를 정리할 계획을 하고 있다.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연대의 추상적인 정서는 국극 커뮤니티를 만나면서 더 구체적인 친밀성을 얻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정은영의 비디오가 전혀 다른 스타일을 생산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재현하고 있는 추상적인 이야기와 구체적인 대상 간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작가는 이 두 가지 스타일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국극 프로젝트’ 이후 그녀는 어떤 내용과 스타일을 보여줄까. 이것이 여기에 작가를 소개하는 이유이자 기대감이다.
 


아티클, 2012년 12월호